사랑스러운 나의 도시 #1-3. 타이페이 셋째날

타이페이 첫째날

타이페이 둘째날

타이페이 넷째 날, 그리고 처음의 그 끝

생에 첫 여행에서 되지도 않는 영어로 대화를 해서 만난 첫 친구 리우. 아침도 먹을 겸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다는 식당으로 향했다. 여기.1104 대만 Taipei City, Zhongshan District, Lane 137, Section 2, Zhongshan North Road, 29號1樓 보통 샤오룽바오2小籠包/小笼包 (Xiǎo lóng bāo, 샤오룽빠오)는 돼지고기를 넣는데 여기는 소고기를 넣는 특별한 곳이라고 한다. 사실 여기에 오기 전에 샤오룽바오를 먹어본 적이 없으니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몰랐다.

베어물면 짭쪼름한 육즙이 가득하다.
보통 우리가 먹는 만두와는 다르게 안에 야채는 많지 않고 고기 중심의 속.
만두의 식감을 살리는 무 말랭이가 없다보니 식감은 좀 심심하지만 쫀득한 고기가 일품이다.

아버지를 보러 왔다더니, 아버지란 사람은 인사하고 우리 음식 주문하는걸 보더니 휙 사라져버렸다. 계산도 해줬더라. 고마웠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리우와 헤어져 거리를 나오니 승려들이 지나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동쪽으로 큰 길을 따라 걷다보니 만난 행천궁(行天宮(Xingtian Temple). 관우신을 모시는 사당이라고 한다. 대기 오염 감소를 위해 향을 피우거나 돈을 태우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울러 공덕함(일종의 헌금함)도 설치하지 않으며 짐승으로 제사를 올리지도 않고 금패를 받지도 않는 등 대외적인 모금과 상업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한다.
사원 내에 바닥에 증기가 나오는 장치들이 있다. 향냄새는 없고 대신 증기로 인해 나름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번엔 다시 남쪽으로 이동. (대충 타이페이역을 중심으로 빙빙 돌았던거다..)
중정기념당(中正紀念堂, 장제스 기념관, Chiang Kai-shek3장제스(중국어: 蔣介石, 병음: Jiǎng Jièshí, 1887년 10월 31일 ~ 1975년 4월 5일) 또는 창카이섹(광둥어: Zoeng Gaai-Sek, 영어: Chiang Kai-shek)은 중화민국의 군인, 정치·군사 지도자이자, 중화민국 국민정부의 제2, 4대 총통 및 국부천대 이후 제1, 3대 총통(1925년 ~ 1975년)이었다. 제스는 자(字)이며 흔히 불린다. 본명은 장중정(중국어: 蔣中正, 병음: Jiǎng Zhōngzhèng). 아명은 루이위안(瑞元), 족보명은 저우타이(周泰), 학명은 즈칭(志淸)으로 종교는 감리교이며, 황푸군관학교 교장, 국민혁명군사령관, 중화민국 국민정부 주석, 중화민국 행정원장, 국민정부군사위원회위원장, 중국 국민당 총재, 삼민주의 청년단 단장 등을 역임하였다., 장제스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한 인물 중 하나다. 꼭 찾아보고 기억하자.)에 닿을 수 있었다.
국가 도서관 길 건너편으로 서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자유광장 아치에서 중정기념당을 바라보면 왼쪽(복쪽)으로 국가표연예술센터, 오른쪽(남쪽)으로 국가극장이 위치하고 있다. 건물들이 큼직큼직하게 지어져있다.


처음부터 타이페이의 어디에 뭐가 있는지 유명한 것은 무엇인지 따위는 1도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걷기만 했는데, 아마 운이 좋았던게다. 때마침 중정 기념당의 근위병 교대식에 가까운 시각이었고 근위병 교대식 행사를 볼 수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강 1시간 간격으로 교대식을 진행한다는 것 같다.

교대식은 약 10분 가량 진행된다.

다시 북서쪽 타이페이 중앙역쪽으로 걷다보면 중화민국 총통부(中華民國總統府, President Hall)를 만날 수 있다.
멋모르고 정문에서 카메라를 들이밀면 총든 군인들에게 제지당한다.
길 건너 촬영을 위한 장소가 마련되어있으니 길 건너에서 촬영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을 수 있다.이 때는 모든 것이 처음이고 모두 한국과 같을거라 생각해서 카메라 들이미는데 용감했었다. 4대만의 경우 관공서 건물 촬영이 불법은 아니지만 UAE 같은 곳은 관공서는 모두 촬영 불가이므로 잘 알아보고 카메라를 들이밀도록 하자.

슬슬 해도 저물고 있고, 만나기로 했던 친구를 만나러 야시장으로 향했다.
친구는 대만으로 떠나기 전 일했던 회사의 파트너사에서 일했던 Neil이란 친구.
친구의 안내로 가게 된 라오허제 야시장.
지룽 강변에 위치한 야시장으로 다른 시장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절이 있다. 왜 대만의 모든 시장 근처에는 절이 있을까?
이유는 단순했다. 사실 야시장 근처에 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을 빌기 위해 절에 가는 사람들이 공양을 위해 음식 등을 들고 가다보니 절을 중심을 시장이 생기게 된 것이라 한다.
그러다보니 한국의 절과는 다르게 도시 곳곳에 절이 있고 절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사람의 눈에 잘 띌 수 있도록 점점 화려해졌다.


사랑스러운 나의 도시 #1-2. 타이페이 둘째날

타이페이 첫째날

타이페이 셋째날

타이페이 넷째 날, 그리고 처음의 그 끝

인생 첫 ‘나홀로’ ‘해외 여행’ 목적지 타이페이. 시작은 책 한권 분량의 경험을 가지고 돌아오겠노라 원대했으나 막상 그 원대한 꿈은 너무나도 어려운 것이었다. 나와 다른 말을 쓰는 사람들이 가득찬 이 도시는 오로지 두려움과 신선함 이 둘 말고는 내게 주는 것이 없었다. 그나마 두려움보다 신선함이 더 컸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렇게 첫날을 보내고 부랴부랴 숙소를 찾고 예약을 마쳤다. 둘째 날의 목표는 새 숙소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것. 다시 첫날이다.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캐리어와 가방을 짊어지고 구글 지도를 따라 길을 걸었다. 큰 사고 없이 도착한 Bouti city capsule Inn. 이른 아침 움직인터라 아직은 체크인 전이었기에 짐을 맡겨두고 다시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기억은 잘 안나는 어느 식당에서 먹은 아침. 뭔가 밀가루 반죽을 튀긴 건데 맛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또다시 시작된 무작정 걷기. 그렇게 거다 당도한 Wenchang Tepmle. 절이다. 그리고 절 앞은 시장이다. 한국과 다르게 도시 한가운데, 그리고 시장 안에 절이 있다. 또. 절 주위가 시장인건지, 시장 한가운데에 절인건지 아직은 모르겟다. 아무튼 한국인인 내게는 신기한 풍경이었다.

야시장이 아닌 시장에서 무대포 여행초보인 내가 할 일은 없었다. 나름의 고집이 있어 가능하면 가게에 무작정 카메라를 들이미는건 자제하는편이니까. (덕분에 사진을 찍기 위해 쓸모 없는 지출도 하게 되고, ‘더’ 많이 먹게 된다.) 뭔가 관광지 스러운 곳을 찾아보자.

그렇게 도착한 곳은 대만 국립박물관의 Land Bank Exhibition Hall.
(아마 과거 은행으로 쓰였던 건물이었다고 하더라)

국립 대만 박물관에 속한 은행 정시관이 있으니 근처에 국립 대만 박물관도 분명히 있을 터, 그렇다 길을 하나 건너면 얼얼바 평화 기념공원 (228 peace monument), 그 가운데 국립 대만 박물관이 있다.

그렇게 공원과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니 시간 잘지키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내 배는 점심 시간을 알렸고 대만에서의 첫 ‘밥’을 먹었다.

이런 종류의 음식을 파는 식당이 많기에 한군데 들어가서 맛있게 밥을 먹고 나와 현지인에게 물어봤더니 이건 홍콩 음식이지 대만풍 음식은 아니란다. (대만에서의 첫 식사가 홍콩풍 음식이라니..)

다시 발을 떼어 마주친 한 건물. 정확한 이름과 용도는 기억이 안나고, 정부? 지자체?의 한 건물이었다. 월요일인가는 관광도 가능 했던 곳. 아쉽지만 입장 가능일은 아니었던터라 들어가보지는 못했다.

하루 종일 걷는 것은 힘들더라.. 숙소로 돌아와 대충 씻고 젖은 수건 따위를 정리하는데 한 방을 쓰게 된 누군가가 들어왔다. 라커를 못 열기에 도움을 주기 위해 대화를 하다보니 이게 무슨일인가! 한국인이었다.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내 나라 사람을 만나다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서로 이름은 무어네, 나이는 몇이네 어디서 일하네 반가움을 마구 내뱉는 사이 또 한명이 들어왔다. 이번엔 타이중에서 온 대만인이었다. 나이는 대충 (당시에) 29정도 였던 듯.
사내놈들이 모이면 늘 그렇다. 서로 내가 잘났네 자랑도 좀 하고, 여자 이야기도 좀 하다가 결국 술 이야기. 타이중에서 온 친구가 자신의 고향에 한국의 막걸리와 비슷한 탁주가 유명하다 했다. 맛있는 술이 있다는데 짧은 영어가 대수랴 고향을 떠나온 사내 셋은 밤 열한시에 길을 나섰다.
(이것도 역시나 무식하기에 가능 했던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대만은 안전한 나라이긴 하지만 타국 땅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그것도 밤 열한시에 술을 찾아 길을 나서다니)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린 그 술을 찾을 수 없었고 한시간을 헤맨 끝에 눈에 들어온 펍에 들어갔고 맥주만 마시고 돌아와야 했었다.

사랑스러운 나의 도시 #1-1. 타이페이 첫째날

타이페이 둘째날

타이페이 셋째날

타이페이 넷째 날, 그리고 처음의 그 끝

2016년 가을. 이직을 준비하며 처음으로 ‘홀로’ 한국이 아닌 나라로 향했다.
원체 게으르기도 하고, 준비하고 계획 하는 것은 몸에 안맞는 터라 당연히 계획 따위는 없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내년엔 꼭 해외여행을 가리라 마음 먹고 여권을 만들 었던 것이… 아마도 이마저도 없었다면 지금 이곳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아름 다운 곳인지 꿈에도 깨닿지 못했을 터.

여권 파워 세계 1~5위 사이를 꿰차고 있는 ‘대한민국’ 여권이다.

사직서를 제출하기 전 두어달 전부터 ‘어딘가 가야지 ‘ 고민만하다 하루하루 시간은 흐르고 결국 퇴직일 보름 전에 이르러서야 부랴부랴 갈 곳을 찾기 시작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비행기 탈 때는 신발 벗어야 해요?’ 수준의 무식함으로 비행기 표를 끊었다. 정말이지 용감했다. 내 손으로 여권을 내밀어 본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당연히 해외여행 시 주의 해야 할 것이라던가 전혀 아는 것이 없었으니…. 심지어, 캐리어 조차 없었다…. 다행히 동생이 가지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아, 심지어 숙소 예약조차 출국 전날 밤 11시에 했다.

아무튼, 그렇게 용감하게 집을 나서 공항으로 향했다.

이 큰 쇳덩어리가 하늘에 뜬다.

인천공항이야 내 나라의 공항이니 내 나라의 언어요 문자인지라 ‘다행히도’ 출국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행히도, 비행기가 처음은 아니었다.)

문제 없이 하늘로 올라갔던 비행기는 상처 없이 날 타이페이의 타오위안 공항에 내려줬고, 막강한 힘을 지닌 대한민국 여권은 날 ‘Hello’ 와 ‘Thank you’ 이 문장만으로 타이페이에 입국 시켜줬다.
얼마나 다행인가.. 구글 번역기가 없었더라면 가방조차 못 찾았을 터인데.. 어찌어찌 캐리어를 찾고, 구글 지도를 열고 무작정 지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 숙소까지의 걸음이 내 여행 스타일이 될 줄이야…)

10월 중순인데도 더웠던 날씨는 날 땀범벅으로 만들었고, 시내 한복판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와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모든 것이 생소했고 신기했다. 아는 이도, 대화를 할 수 있는 이도 없는 이 도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 ‘걸어서 내가 예약 한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하는 것’. 용감함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아니면 운이 좋았던 것일까, 대만은 내 나라 대한민국만큼 안전한 나라였고 타국 땅에서 말한마디 할 줄 모르는 30대의 어른아이를 괴롭히지는 않았다.
30여분을 걸었을까.. 난 생에 첫 여행의 첫번째 목표인 ‘숙소 찾기’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었다. 삐쭉삐쭉 게스트하우스 안으로 들어갔고, 되지도 않는 영어로 체크인을 시도하고, 열쇠를 받았다. (오예!)
일단 캐리어와 가방을 대강 정리해서 사물함에 넣고 또한번 무작정 거리로 나가는 순간, 두 명의 외국인이 내 뒤를 따라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오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외국인 : “안녕, 너도 여행을 왔구나, 어디서 왔니?”
나 : (두려움에 떨며)”안녕, 난 한국에서 왔어. 너희는 어디에서 왔니?”
외국인 : “우린 OO(기억 안남)에서 왔어, 우리 지금부터 101 타워에 갈건데 너도 같이 갈래?”
나 : (처음 본 날 데리고 어딜 가겠다고???) 우물쭈물…
외국인 : ” 우린 택시를 불렀어 택시를 타고 갈꺼야! 같이 가자”
나 : (다시 또 두려움에 떨며..) ” 아니야, 난 오늘 101타워에 가지 않을꺼야, 아마도 모레쯤?”
외국인 : (쿨하게) ” 그래 그럼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즐거운 여행이 되길 빌께 안녕!”
나 :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래 너희도! 안녕”
(대충.. 이런 식의 대화였던 것 같다)

사실 그들과 함께 가지 않았던 것이 좋은 선택이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약간의 아쉬움과, 약간의 안도감을 안고 구글 지도에 의지한 채 큰 도로로 향했다.

처음 만난 타이페이 거리의 모습은 ‘어릴적 TV에서 봤던 서울 + 일본’ 의 느낌이었다. 거리는 오토바이가 즐비 했고, 중국을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매우 깨끗했고, 질서있는 모습이었다.

인상적이었던 대만 도로의 ‘이륜차 ‘ 좌회전 시스템
연두색 화살표가 이륜차의 이동경로이다.
이륜차는 좌회전 신호에 이동하지 않고, 직진 신호에 직진을 한 다음 사진과 그림의 네모 안에 정차한다.
대기 후 ‘다음 직진 신호’에 직진한다.

대만은 야시장이라 했던가, 우선은 가장 가까운 시장을 찾았다. 다행히도 멀지 않은 곳에 야시장이 있었고 그렇게 대한민국 촌놈은 걸어걸어 한 야시장에 도착했다.
Shuangcheng Street Night Market. (당시엔 이름도 모르고 무작정 걸었다)
아직은 해지기 전인지라 이제서야 장사를 준비하는 시점인지라 보는 것 말고는 할 것이 아무 것도 없었고, 더위에 지친 목을 축을 음료를 하나 사고 또다시 걷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1지금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니 굳이 그럴 필요 없었다. 저 사진을 찍은 시각이 17시 경이니까 대충 음료 한잔 먹고 쉬었어도 아무런 문제 없었는데…..

그렇게 일단 발걸음을 떼면서 다시 휴대폰을 들여다 봤다. ‘드디어! 이제서야!’ 타이페이 여행을 검색 했다. 여행을 오기 전에, 여행지에 도착해서 사람들이 어딜 가는지 찾아봤단거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바로 Shilin Market.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일단 다들 그리도 맛있다 하는 ‘지파이’에 도전 했다.

맛있었다…

여행은.. 둘 이상 다녔어야 한다는 것을 첫날 저녁 지파이를 먹고 바로 깨닳을 수 있었다. 배가 불렀다… 먹을 것 천국인데, 더 먹을 수가 없었다. 이미 내 위장은 고등학교 시절 그 튼튼하던 위장은 아니었고, 이미 몸은 지쳤어도 아직은 숙소로 돌아갈 수 없었다. 왜? 시간이 아까우니까.

그렇게 홀로 야시장을 배회하다 만난 절.

한국인 입장에서는 나름 신기한 풍경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한국의 절은 대부분 산속에 있으니까. 한참을 헤집고 다닌 북적거리는 시장 한 가운데에 절이라니..
(왜 시장 한가운데에 절이 있는지는 삼일째가 되어서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또 얼마나 걸었을까… 이미 게으름에 찌든 내 몸은 더 움직일 수 없다는 신호를 보냈고 숙소로 돌아와 생에 첫 여행의 첫날을 마무리 해야 했다.

편의점에서 사온 우육면과 육포